폐가만 늘어가는 시골 풍경의 아쉬움
11월말은 도시, 농촌 구분 없이 앞으로 1년간 먹을 먹거리를 준비하는 김장에 여념이 없다. 가을철 차가운 기운을 뚫고 잘 자란 배추나 무우를 절여 양념과 함께 넣어 발효 시키는 김치는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시골에 가 보니 탐스런 배추들이 벌써 수확되어 놓여있다. 한 눈에 봐도 잘 자란 싱싱한 배추임에 틀림없다.
배추가 있었던 밭에 가 보니 벌써 수확이 끝났기에 잔 잎만 남아 있다. 배추를 수확하여 좋기는 하나 겨울철 스산한 느낌과 함께 먹거리를 제공한 배추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함께 교차된다.
무우 역시 수확하여 김장에 사용된다. 그리고 남은 줄기는 이렇게 묶어 말려 둔다. 시골에서는 시래기라 부른다. 이렇게 말려 놓은 시래기를 한 겨울이나 봄 등에 물에 불려 김치 찌게 등을 끊여 먹으면 좋다. 버릴게 없는 채소의 쓰임새이다.
마을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던 은행나무는 바닥에 노란 은행잎을 떨구고 앙상하게 서 있다. 은행잎의 노랑색과 주변의 갈색이 어울려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시골 마을에는 인구가 점점 줄어 폐가가 늘고 있다. 한 할머니가 사시던 집은 이렇게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예전에 지어졌던 집이기에 황토 흙으로 벽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콘크리트 벽이 대세인 요즘에 이런 흙 벽은 찾아 보기 힘들다.
폐가의 마당은 잡초만 무성하다. 사람이 살지 않기에 한 여름에는 잡초가 더욱 무성 했을 것이고 모기 역시 많았을 것이다. 불과 몇 년전 사람이 살았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주인을 잃은 마루는 다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수 있을까 ?
사시던 분께 맛난 물을 제공했던 물 호스는 이렇게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다. 양동이에 물을 넣을 때 호스 끝이 뜨지 말라고 달아 놓은 쇠붙이가 주인의 생활의 지혜를 느끼게 해 준다.
허물어진 벽 안에 전기 콘센트가 외로워 보인다. 모두 한 때는 중요한 것이었으나 나중에 쓸모 없어지게 되는 인생 무상을 느끼게 한다.
잡초 너머로 보이는 부엌의 나무 문은 뜯어져가고 있다. 해가 갈 수록 점점 없어지고 결국에는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 곳의 주인은 이제 사람이 아닌 주변에 무성한 잡초일 듯 하다.
한 쪽을 보니 장독대가 있다. 장독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열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냥 사진만 찍고 만다. 장독보다 키가 커진 잡초가 종국에는 이를 완전히 감쌀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깨지지 않는 한 형태를 유지하는 도자기인 항아리의 우수성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 청자가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하는 것처럼 폐가에서 장독은 그 자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폐가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밝다. 이 곳의 주인이 예전에 맞이 했었을 따뜻한 아침 해인데 이제는 잡초만이 이를 반긴다. 그나마 밝은 햇빛이 들어와 폐가를 바라 보며 느꼈던 아쉬움과 회환의 감정이 조금은 사라진다.
초겨울 시골의 풍경은 정리 모드이다. 수확 후 남겨진 풍경은 다음 해를 준비하는 모습들이다. 아울러 늘어만 가는 폐가는 아쉬움을 전해 주며, 노인들만 살고 있는 시골의 현 주소를 잘 보여 준다. 시골과 시골의 주인이신 어르신들이 모두 오래 오래 잘 지내시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