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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동향

MBC뉴스, 애증과 애정 뒤섞인 감정의 볶음밥

by SenseChef 2012. 11. 6.

시골에서 자란 나의 유년기에 텔레비젼은 정말 중요한 의미를 주는 신기한 물건이었습니다. 들판에서 친구들과 열심히 뛰어 놀다가 들어와 보면 온갖 세상의 소식을 충실히 전해주는 텔레비젼이 무척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억 속에서 MBC는 더 특별했습니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호랑이 선생님", "수사 반장" 등을 통해 MBC에 먼저 호감을 갖기 시작했지만 나중에 철들때쯤에는 9시 뉴스 시간대로도 이러한 선호도가 옮겨 갔습니다.

 

필자의 아버지께서는 MBC가 아닌 다른 뉴스를 보시는데 제가 TV 앞에 있을 때는 꼭 우겨서 MBC 뉴스를 보곤 했습니다. 이러한 선호도는 그후로도 쭉 이어져 드라마를 볼 때는 TV 리모콘 주도권을 전혀 주장하지 않던 제가 저녁 9시에는 리모콘을 부여 잡고 있는 상황이 되었지요 !

 

이러던 제가 이제는 MBC 뉴스를 언제 보았던 것이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하기만 합니다. 물론 TV에서 리모콘으로 채널을 올리고 내리다가 나오는 지나가는 MBC 뉴스를 보았지만 11번에 맞추고 계속 시청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마치 애인에게 실연 당한 후 이제는 애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연인의 마음 같다고나 할까요 ? 이렇게 헤어진 애인이지만 사랑했던 감정이 남아 있기에 애증은 남아 있지요 ! 아름답고 즐거웠던 추억이 주는 애잔함일것입니다. 이처럼 묘한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이 MBC 9시 뉴스입니다.

  

제가 즐겨보던 시절 MBC 뉴스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생동감이 있었습니다. 다른 채널의 뉴스도 보았지만 거기에는 천편일률적이고 틀에 짜여져 느낌 없는 뉴스들이 채워져 있었는데 MBC 뉴스에는 사회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지적과 참여가 있었습니다. 직설적이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앵커나 기자가 전하는 뉘앙스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MBC 뉴스에 있었던 카메라 출동이 생각납니다. 기자와 카메라가 어딘가 문제가 있는 곳을 급습하는 것을 볼 때면 마치 내 자신이 경찰이 된 것 같았고 결국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자에게, 뉴스에게, MBC에게 감사하곤 했습니다.

 

 

                                         Source: moonsoonc.tistory.com

 

글을 쓰면서 카메라 출동이 생각나 뉴스를 검색해 봅니다. 한 카페에 "염산 뿌려대는 김양식장"이라는 2004년의 카메라 출동 보도 사례가 있네요 !  바다에서 김을 양식하는데 정해진 유기산 대신 생태계에 해로운 공업용 염산이 사용된다는 고발입니다. 즐겨 먹던 김 때문에 이렇게 환경이 파괴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며, MBC 뉴스에서 보도가 되었으니 이젠 더 이상 김 양식업자들이 공업용 염산을 사용하지 않겠지라는 안도감을 MBC 뉴스는 제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MBC 뉴스가 언제부터인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날카로움은 없어지고, 제도권의 목소리에만 충실해진 것이지요 ! 그리고 MBC 노조는 무려 170일간의 장기 파업에 돌입합니다. 그래도 개선되는 것은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다른 채널의 뉴스가 오히려 더 좋아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채널이 11번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옮겨간 다른 뉴스 채널들에 무엇인가 혁신이 있었을까요 ?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MBC 뉴스의 기조가 변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뉴스를 특정 채널을 정해놓고 보지 않습니다. 8시에 볼 때도 있고 9시에 볼 때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TV에서 뉴스를 보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어제 8시에 채널을 돌리다보니 MBC가 시간대를 옮겨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MBC 뉴스 임을 알고는 어떤지 살펴 볼 생각도 않고 그냥 다른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MBC 뉴스가 어떤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이젠 관심 밖에 있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있어야 생기는 것인데 MBC 뉴스는 그동안 보여준 실망감에 이제는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9시에서 8시로 뉴스 시간대를 옮겨 시청률을 올려 보겠다는건데 이러한 시도 자체도 실망감을 줍니다.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들이 MBC 뉴스를 외면하는 것이 시간대가 아님은 벌써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기에 공지의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MBC만 이걸 모르고 있을까요 ? 아닐 것입니다.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 것일까요 ? 아니면 이렇게라도 무언가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걸까요 ?

 

이렇게 MBC 뉴스에 대해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MBC나 MBC 뉴스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언가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미련이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방송시간대까지 바꾼 MBC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 방법은 한가지밖에 없습니다. 돌려 말할 필요없이 예전의 날카로움과 사회 참여를 회복하는 것뿐입니다. 어떤 구호나 피상적인 보여줌도 필요없습니다. 마음에서 진심으로 전해지는 변화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마음을 열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MBC 뉴스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면서, 애정과 애증이 뒤섞인 제 자신의 감정의 볶음밥을 비벼 봅니다.

 

감사합니다.